[미술이론-서양미술사] 인상주의 회화와 현대 서양추상회화에 끼친 영향
[미술이론-서양미술사]
인상주의 회화와 현대 서양추상회화에 끼친 영향
회화와 현대 서양추상회화에 끼친 영향.
인상주의 미술을 근대 미술의 마지막인 동시에 현대 미술의 시작으로 본다. 그만큼 서양 미술사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미술 사조이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부르주아지 계급이 등장하면서 사회의 변화가 나타났다. 근대사회의 양상(modernity=새로운 사회)으로 산업과 여가, 도시 공간의 다양성, 새로운 신분 계층의 등장(시민과 노동자 등)이 나타난다. 미술품도 시장 경쟁을 해야 하는 상품화되면서 고객(주로 부르주아지)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 미술에도 미술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 의미 내용을 나타내기 위한 조형(그림, 조각) 방법은 다르다. 인상주의는 과거 고전주의나 르네상스미술 그리고 사실주의 미술이 대상을 현실 공간에 놓인 실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원근법이나 명암법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모든 사물을 보이게 하는 광원과 인간의 시각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경험만을 나타내고자 했다. 인상주의 미술은 어떤 대상에 충실한 사실주의 미술도 아니고 미술가 자신의 이야기나 감정에 충실한 낭만주의 미술도 아니다. 오직 "보이는 대로 그린다."라는 미술가 자신의 시각적 경험에 충실했던 미술이었다.
인상주의 미술은 그 내용 즉 정신적인 측면에서 낭만주의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낭만주의 미술이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이야기)을 보여주기 위해 조형적 특징을 구성하였다면 인상주의 미술은 내용(이야기)보다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물들의 시각적 특징을 포착하여 나타내고자 했다. 이러한 면에서 인상주의 미술은 사실주의 미술을 이어받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조형적 특징은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사실주의 미술의 조형적 특징은 가능한 한 어떤 대상을 사실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면 인상주의 미술은 미술가의 시각적 경험을 나타낸 것이므로 사실주의가 사실 그 자체를 중시했다면 인상주의 미술은 미술가의 시각적 경험을 중요시 한다. 또한 낭만주의 미술은 미술가 자신이 나타내고자 했던 이야기 또는 미술가 자신의 정서나 생각을 중요시하지만 인상주의 미술은 미술가가 포착한 사물의 시각적 경험을 중시한다.
* 최초의 화가들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바자유, 등으로 모두 샤를 글레의 제자로서 한 화실에서 공부하였다. 글레의 교육 방침이 너무나 아카데미즘에 충실하므로 반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이후에 피사로, 세잔, 모리조, 기요멩과 교류하였고, 나중에는 드가와 마네가 합류하였다.
1874년 전시회에 참가한 화가는 모네, 세잔, 드가, 아르맹 기요멩, 모리조, 피사로, 르노아르, 시슬레 등이다. 이들이 인상파의 주요 화가들이 된다. 이 전시회를 인상파 제 1회 전시회라고 하나, 처음부터 인상화파라는 명칭을 쓴 것은 아니다. 이 그림들은 당시의 아카데미즘의 사실적 그림과는 너무 동 떨어져서 나쁘게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세평은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즉 “기성 권위에 대한 젊은 화가들의 반발”로 보았다. (*이 시기는 보불 전쟁에 패배한 프랑스는 파리 코뮌이 형성되고, 사회주의 이념이 넘쳐나서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시 장소를 빌려준 사진가 나다르도 좌파주의자라고 한다.)
1877년 3회 전시회 때는 인상파라는 말이 일반화되어서 통용되었다.
그러나, 각 구성 멤버들은 개성이 다르고, 미술의 표현도 다양하여 독립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단일한 이념이나, 원칙도 없이 각 화가들은 다양한 사고를 주장하였으므로, 이것이 오히려 특징이 되었다.
인상주의의 시각 경험에 대한 표현은 ‘형식이 곧 내용’이라는 모더니즘 미술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미술은 인간의 시각적 경험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그 조형적 특징만으로 충분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미술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연이나 어떤 대상의 형태를 화면 속에 도입해서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라는 시각적 대상으로서 미술작품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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