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론-서양미술사] 팝아트
[미술이론-서양미술사] 팝아트
◉팝 아트 – 세상은 거대한 회화
라우셴버그와 존스가 구상미술을 재도입함으로써 1960년 초반의 미술계는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주제를 그렸던 팝아트 계열의 확들을 위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을 비롯한 앤디워홀, 클래스 올덴버그, 제임스 로젠퀴스트 같은 팝 아티스트들은 모두 상업적인 화가로서 활약한 경력이 있었고 그들의 작품은 광장의 네온사인이나 대중매체, 광고 같은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구상적인 주제로 돌아갔다고 해서 전통적 미술로 귀환한 것은 아니다. 팝 아티스트들은 대량 소비시대의 산물인 햄버거, 변기, 잔디 깎는 기계, 립스틱 케이스, 스파게티,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경애 등을 표현했다.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회화로 간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라우셴버그)
1962년, 팝 아티스트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획득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빛나는 색채, 날렵한 디자인(때로는 거대한 사이즈로 확대된), 기계적인 질감들은 대중들에게 매우 친근한 것이었다.
“팝 아트가 내게 남긴 것은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점입니다. 나는 광고 게시판이나 코카콜라 병 같은 사물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어요. 미술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세상을 즐겁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죠. 팝아트는 이런 일을 시도한 금세기 유일한 미술사조입니다” (팝 아트 수집가이자 건축가, 필립 존슨)
리히텐슈타인 – 만화의 영상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ein, 1923~97)
- 미국 출신의 팝아티스트
- 미국문화의 경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만화으 무자비한 폭력장면과 싸구려 로맨스를 ᅟᅮᆼ자하는 그림을 그렸다.
- 전쟁이나 로맨스를 담은 만화를 즐겨 그리는 이유 “벽에 걸 수도 없을 만큼 경멸스러운 그림은 없겠죠. 사람들은 아무거나 그림이면 벽에 걸어 놓기 마련입니다. 물감을 떨어드린 넝마라 할지라도 별 의심 없이 벽에 걸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주제뿐 아니라 기법까지도 만화에서 차용한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 흑백과 더불어 밝은 원색을 사용하는 그는 단순화된 형태에 뚜렷한 윤곽선을 사용해 기계적인 인쇄로 생긴 점까지 표현하고 있다.
- <꽝> p.306 (1963, 런던 테이트 미술관) : 만화 속의 한 도면을 광고 게시판 크기로 확대함으로꺼 리히텐슈타인은 마치 관객의 시시한 취향을 비웃고 있는 듯하다.
워홀 – 팝의 교황(The Pope of Pop)
앤디 워홀(Andy Warhol, 1930~87)
- 그의 예술 주제를 슈퍼마켓의 찬장이나 대중잡지의 표지에서 찾고 있는데, 마릴린 먼로나 켐벨 수프 깡통 같은 대량 생산된 이미지들을 실크스크린 판화를 통해 반복하고 있다.
- 워홀의 이 유명한 작품들은 미술이 미술관에서 빠져나와 일상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 “당신이 일단 팝 아트를 감상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미국을 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된다”
- 대중들에게 일상용품 같은 주위 환경을 다시 돌아보게 할 뿐 아니라, 산업사회에서 상실된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 워홀은 과격하고 무감각한 발언으 남발하는 데 쾌감을 느꼈다.
- “모든 사람들이 똑같아진다면 멋질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했으면 싶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1963~ 65년까지 ‘공장’이라 불리는 그의 화실에서 수프 깡통, 코카콜라병, 지폐, 유명인의 초상, 재해현장 같은 이미지를 그렸다.
- 1963~68년 ‘진부함’이라는 테마에 새 지평을 연 60여개의 영화를 제작했다.
- 그는 단기간 명성을 얻었고 미술이 화가아의 개성을 표현하는 순수미술이라는 개념에 반대했다.
- 광고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중복이미지로 워홀은 미술을 일상생활로 끌어 내어 대중들에게 건네준 것이다.
- 미술이 한 사회의 영혼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워홀의 작품은 미국인의 일상이 갖는 비개성성과 반복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 “앤디는 고야처럼 이시대의 공포를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현대화가, 줄리앙 슈나벨)
올덴버그 – 변형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 1959년에서 1965년 사이에 퍼포먼스의 전신인 해프닝에 몰두했던 미국의 조각가
- 우리에게 친숙한 사물들을 삼차원적으로 거대하게 확대시킨 작품을 만들었다.
- 일상용품은 기능이라는 현대적 마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들은 그 실용성에만 주목한 나머지 그에 대한 심미안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
- 옷핀, 야구 방망이, 립스틱 같은 사물을 광고판만큼이나 거대하게 확대시켰다. 또한 그 재질을 변형시켰는데 타이프라이터를 부드러운 비닐로 만들고 얼음 케이스를 베갯속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 헝겊으로 만든 부드러운 조각은 달리의 흐느적거리는 시계에 대한 모방이었다.
- 사물을 거대화하고 그 재질을 변형시킴으로써 그는 관객들의 무감한 마비상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사물의 힘을 되돌려 준다”고 믿었다.
- 거대한 공공기념비 조각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이 스케치 형태로만 남아있다. 대포와 군인들이 있는 표준적인 기념비 대신 숟가락이나 담배꽁초, 껍질 벗긴 바나나 같은 일상 사물들을 거대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런던에 있는 템주 강에는 물결에 따라 물이 찼다가 빠졌다하는 거대한 변기를 설치하려고 했었다.
- 미술 작품의 거대한 규모를 중요한 성질로 간주했으며 일상의 사물들을 찬찬히 관찰하게 한 최초의 조각가로 기록된다.
옵아트
‘옵 아트’ 혹은 ‘옵티컬 아트’는 60년대 중반, 영국 화가 브릿제 릴리, 프랑스에서 활동한 헝가리 화가 빅토르 바자를리, 미국 화가 리처드 아누츠키위츠와 로렌즈 푼즈에 의해 발달했다.
옵 아트는 움직이는 시각적 착시효과를 창조하기 위해 추상적 무늬와 색상을 결합시키고 있다.
*석고인간
조지 시걸(George Segal, 1924~2000) : 1960년대 초 미국의 조각가
- 실제 인물을 석고로 떠내고 주위에 진짜 환경물을 갖다 놓는 새로운 미술형태를 개발했다.
- 마치 붕대를 휘감고 서있는 실제 인간 같은 이 조형물은 섬찟할 정도로 생생하게 만들어졌다.
- 살아있는 듯 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시걸의 인물상은 어딘지 유령 같고 비개성적이다.
- 보통 단체로 몰려있지만 그들의 모습은 고독과 고립감을 반영하고 있다.
- 시걸의 무뚝뚝한 조각은 생기 넘치는 미국 현장 화가들 속에서 홀로 침울한 그림을 그렸던 호퍼와 비슷하다.
- 일상의 경험을 충격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결합은 팝 아티스트와 공통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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