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론-한국미술사] 남북국시대의 미술-불교미술의 황금시대 '조각' (3)



[미술이론-한국미술사] 남북국시대의 미술-불교미술의 황금시대 '조각' (3)




(*클릭 한국미술사 정리 자료임으로 여기서 p. 페이지수는 도판을 보기위해 체크 해놓은 것 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불상의 형식
  
- 육계 : 부처의 머리 위에 혹과 같이 살 또는 머리뼈가 튀어 나온 것으로 지혜를 상징한다. 

- 나발 : 오른쪽으로 말려 있는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주로 여래의 머리 형식에 사용되었다. 
- 소발 : 별다른 장식이 없는 머리 형태로, 석조불 계통에서 많이 볼 수 있다.
- 백호 :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로, 우른쪽으로 말려 있다. 광명을 비춘다는 의미가 있으며 대부분의 여래와 보살상에 표현되었다. 초기에는 이마 가운데에 작은 원형을 도드라지게 새기거나 수정 같은 보석을끼워넣기도 했고, 드물게는 채색으로 직접 그리기도 한다.
- 삼도 : 불상의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을 말한다. 삶과 죽음을 윤회하는 인과를 나타내며 혹도, 번뇌도, 업도를 의미한다.
 

 
 
 

 
 
 

 
부처의 진신이자 법신불 : 비로자나불상
 

 
**부처의 진신인 법신을 나태는 존칭으로 부처의 광명이 모든 곳에 두루 비치어 어둠을 없애주고 모든 세계를 포용한다는 의미의 부처이다.
 

 
 
 

 
비로자나불상은 8세기 중엽의 남북국 시대에 출현하기 시작하여 9세기 중엽 이후에 크게 유행하였던 불상 형식이며 두 손은 지권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 도상이 성립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광명신 또는 태양신의 성격이 강하여 고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아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비로자나불의 개념은 태양이 지닌 특성에서 비유되어 온 세계를 두루 비추어 어둠을 없애주고, 그 광명은 항상 빛나고 사라지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을 밝게 해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남북국 시대 비로자나불상은 머리 형태에 따라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형과 나발이 표현된 여래형, 여래형이면서 보관을 쓴 보관여래형으로 나누어진다. 그중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상 같은 단독의 여래형 비로자나불상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며 간혹 법수사 삼존불상, 불국사 삼존불상이나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 사리함과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의 1층 탑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오방불의 하나로 등장하는 예도 있다.
 

 
9세기 중엽에 조성된 비로자나 불상은 대체로 종교적인 정신성과 형태의 긴장감이 약화되면서 몸이 왜소해지고 조형적으로도 형식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남북국 시대의 비로자나불상 중에서 몇 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상북도에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국 시대의 불교가 8세기 중엽 이후 신라 왕실이나 진골 귀족 중심에서 지방 사회로 확대 되어 가는 당시 불교계의 전반적인 경향을 보여주며, 불교조각도 점차 경주를 벗어나 각 지방으로 확산 되어갔음을 의미한다.
 

 
 
 

 
* 가장 먼저 등장한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상 (p.109)
 

 
비로자나불로 조상명에 기록되어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부상은 경상남도 산청군 내원사 비로전에 안치된 석남암사 석조 비로자나불상이다.
 

 
대좌 중대석에 영태 2이라는 명문이 있는 납석제 사리 항아리가 발견되어, 원래 산청군 석남암사에 있었으며 8세기 중엽에 비로자나불상이 처음 조성되엇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는 비로자나불상으로는 가장 오래되었으며, 신라 왕실이 아니라 그 지역 시주자와 승려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불상으로 8세기 중엽 이후의 불교계에 나타나는 새로운 변화를 암시한다.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은 현재 광배와 대좌 일부가 파손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지만 둥글고 원만한 얼굴, 당당하고 탄력있는 불신에서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한 8세기 중엽의 불상에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 9세기의 기년명 비로자나불상
 

 
남북국 시대 비로자나불상으로 조상명이 있는 대표적인 예는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110)과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 불상(112)이다. 이 두 불상은 9세기 중엽에 조성되었지만 얼굴이나 착의법, 옷 주름 표현 등에서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경상도지역에서 조성된 같은 시기의 비로자나불상과도 다른 계통의 형식을 보여준다. 지권인을 한 두 손은 모두 보수된 것이지만, 9세기의 다른 비로자나불상에 비해 가슴 아래로 내려와 있고 유난히 작게 표현되어있다.
 

 
 
 

 
* 개성이 강한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상(p.110)
 

 
전라남도 장흥군에 전해오는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상은 2051미터의 큰 불상으로 왼팔 뒷면에 858년 김수종이 발원하였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평평하게 처리된 콧등이나 두드러진 인중, 두툼하고 작은 입술, 유난히 크고 길게 축 처진 두 귀 표현 등은 이전의 불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특징이다.
 

 
법의는 8세기 석굴암 본존불에 보이는 부채골 모양의 옷주름이 형식화된 것이다. 불상의 머리와 육계 사이에 장식된 계주는 흙으로 만들어 나중에 덧붙인 것으로, 9세기 이후의 불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보림사 비로자나불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은, 884년 같은 절에 세워진 보조선사 창성탑비 비문에 노사나불로 기록되어 있는 점이다.
 

 
노사나불의 경우, 정확한 도상은 알 수 없지만 중국 용문석굴 봉선사동 노사나불이나 일본 도다이지와 도쇼다이지에 안치된 8세기의 노사나불상을 보면 대체로 여래형 모습에 시모외인, 여원인의 통인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문에 따라 노사나불로 밝혀진 남북국 후기의 강원도 동해 삼화사 철조 노사나불좌상에서 볼 수 있듯이 여원인과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남북국 시대에는 법신물의 비로자나불과 보신불의 노사나불이 별다른 구별 없이 혼용되어 사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 인간적인 모습의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상(p.112)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상은 불상과 대좌가 모두 철로 주조된 유일한 예로 알려져있다.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상은 등 뒤에 8행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명문의 내용에 따라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상은 865년에 철원군 향도 1500여명이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머리는 육계가 뚜렷하지 않고 넓게 퍼져 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가 작게 표현되어 인간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옷주름의 표현은 좀 더 형식화 되었다. 현재 광배는 없어졌지만, 철로 주조된 대좌와 함께 완전한 형태를 갖춘 보기 드문 불상이다.
 
 
 
 

 
 
 

 
* 비밀을 간직한 해인사 목조 비로자나불상(p.113)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의 목조 비로자나불상 2구는 그동안 조선 초기의 불상으로 막연하게 추정되어왔다. 그러나 20056월 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던 중 법보전 불상의 안쪽 벽에서 중화3(883)에 대각간이 발원하여 조성되었다고 하는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로, 현존하는 목조 불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예임이 밝혀졌다.
 

 
 
 

 
옛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불교조각
 

 
발해의 초기 불교조각은 중국 길림성 돈화현 오동성 일대와 중경, 동경에서 발견되었는데 대체로 고구려 불상 양식을 계숭하고 있다. 발해의 불교조각은 전반적으로 고구려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형태나 양감 등에서 발해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여러 개의 팔이 달린 관음보살상과 다수의 소조 관음보살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관음신앙의 성행과 함께 밀교적 요소가 있는 발해 불교의 단면을 말해준다.
 

 
 
 

 
 
 
 

 
**시간과 방위의 신, 십이지상
 

 
십이지상은 쥐, , 호랑이, 토끼, , , , , 원숭이, , , 돼지의 12가지 동물을 상징한다. 십이지에 대한 개념은 이집트, 그릿,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나 동물의 모습으로 형상화 된 것은 중국 한 대(기원전 202~220)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당대 문헌에는 십이지가 시간과 방위의 신으로 서술되었으며 방위신인 사신과 연관되어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용품으로 제작되거나 능묘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남북국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무인 형태의 십이지상이 압도적으로 많이 남아 있으며 조각의 한 주제로서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납석제 뱀과 말상을 비롯하여 김유신묘, 성덕왕릉, 원성왕릉(괘릉), 흥덕왕릉의 호석에 새겨진 십이지상이 있다.
 

 
 
 

 
**죽은 자를 호위하는 능묘 조각
 

 
능묘조각은 능묘를 보호하고 장엄하기 위하여 입구 양쪽 배치된 문무석인과 석수, 동자형 석인 등을 말한다. 능묘 주위에 조각을 배치하는 풍습은 중국 전한 시대부터 시작되어 후한 시대에 이르러 일반화되었다. 원래 능묘조각은 황제나 왕의 능에만 설치하였으며 석인, 석수의 수로 묘 주인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북국 시대에 당나라의 제도를 따라 왕릉에만 능묘조각을 배치하였다. 석인은 관복을 입고 손에 홀을 든 문인과 칼을 쥔 무관이 마주보고 있으며, 그 옆에는 이국적인 모습을 한 호인형 수문장 한쌍을 첨가한 것이 특징이다.
 

 
남북국시대의 대표적인 예로는 선덕왕릉, 원성왕릉(괘릉), 흥덕왕릉 등의 능묘조각이 있다.
 

 
 
 

 
 
**재료에 따른 불상의 종류
- 금동불
- 철불
- 석불
- 소조불
- 건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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