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론-서양미술사]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념미술이 지향했던 지향점, 고수했던 4가지 원칙, 이후 미술사에 미친 영향.

[미술이론-서양미술사]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념미술이 지향했던 지향점, 고수했던 4가지 원칙, 이후 미술사에 미친 영향.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념미술이 지향했던 지향점, 고수했던 4가지 원칙, 이후 미술사에 미친 영향.
 
혼란과 불안했던 1960년대를 지나 60년대 후반에 들어 개념미술이 빠른 시간에 미술 시장 안으로 편입되었고 1970년대 초 개념미술가라고 자칭하는 그룹의 작가들은 회화뿐 아니라 조각도 이미 한물 간 유산이라 치부했다.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미술이 자리매김함과 함께 이미지, 개성, 감정, 메시지, 수공예적 성격을 제거한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미술작품 형식 자체를 추방했다. 그들은 비록 가시화되지 않더라도 아이디어 그 자체는 완성된 생산물만큼 중요한 미술작품이라고 말했다. 미술은 선사시대 때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했으며, 보이는 것과 기록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은 아이디어 예술이 되었다.
 
개념미술은 순수하게 언어적으로 이해되는 형식과 미니멀아트에서 발전하여 수학적-기하학적, 시공간적, 유형학적, 전기적 형식과 연관된 개념적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크너의 <측량방>이라는 작품은 개념미술의 시공간적 형식을 설명할 수 있다. 작품 <측량방>은 빈 전시 공간을 정확히 재어 나누고 벽 가장가리 중심에 있는 접착성이 있는 테이프에 각 공간의 치수를 적어 넣어 전시장이라는 기하학적으로 추상적인 존재와 실제 존재를 비교한다.
 
한네 다보벤의 작품들은 미니멀 아트과 연계된 솔 르윗의 물질적 구현 원칙과 아이디어나 개념을 중요시 하는 그의 형식과 많이 닮았다.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은 달력 시스템의 수학적인 추상 구조에 기반을 둔 것으로 미리 결정된 일정 기간을 그림으로 표현한 드로잉 연작이다. 다보벤은 날짜에서 수의 합을 끌어내고 또 다른 산술적 조작을 가해 수적 결과를 복잡하게 만든 각각의 숫자는 그래픽 격자로 삽입되었고 복잡한 다이어그램을 만들어낸 결과 안에서 시간 현상은 이중적 방식으로 반영되었다. 다보벤이 손으로 쓴 일련의 숫자는 그것이 나타내는 시간의 연속성뿐만 아니라 실제 작품 제작에 소요된 시간에 대한 지표이다.
 
다보벤이 추구한 전기적 형식은 추후에 개념미술가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로만 오팔카의 연작 <무한회화>1965<1965/1> 첫 그림을 시작으로 같은 규격에 동일한 기법을 사용하되 한 그림에서 한 그름으로 옮겨갈 때 흰색 알료의 비율을 1퍼센트씩 늘려감에 점차 숫자와 배경을 분간이 힘들어졌다. 또 오팔카는 작품에 적어 넣은 숫자(35327 시작해 두 번째 작품은 35328 연이어 가는 방식이었다.)를 세는 자신의 목소리와 그림을 완성하는 소리를 녹음하고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의 연작은 이러한 연속적인 행위 속에서 무한한 접근과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운명이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개념적 작업을 하던 많은 아티스트들은 영화나 사진 같은 복제 미디어가 지닌 연속의 잠재성을 발견한다. 사진이 내가 직접 보는 풍경을 절대적으로 재현하게 됨으로 이전부터 표현의 기능으로 인해 재현의 기능을 잃은 회화를 밀어내고 자리매김 하게 된다. 그런 사진이 개념미술에 편입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 한스 펠트만, 페터 뢰르는 각자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진의 연속 개념을 발전 시켰다. 이중 펠트만 <어느 여인의 모든 옷>이라는 작품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서의 사진과 일상 현상으로서의 사진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모든 것이 예술이다라는 생각은 행위 예술, 퍼포먼스, 해프닝을 새로운 미술 형태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런 점에서 개념 미술의 기반이 다다이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비디오, 사진 등 복제 미디어가 진부했던 옷을 벗고 개념미술가들에 의해 작품이 되고 후에 등장한 것 은 퍼포먼스이다. 회화나 조각들은 사람의 신체를 미술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퍼포먼스는 신체를 예술적 소재로 사용했다.
 
- 브루스 나우만은 미술가가 작업실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했다. 프로세스에 비중을 두는 자신의 예술관에 맞춰 자신의 신체를 미술의 소재로 삼고 작업실 속 일상이나 엉뚱한 행위를 비디오로 포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용된 비디오의 목적은 미술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행위를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 비토 아콘치는 다양한 형식의 퍼포먼스를 시도했는데 그 중 하나는 아콘치가 무작위로 누군가를 선별하고 그 선택된 대상이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미행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세심하게 매일 매일 이벤트 과정을 목록화 했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자신이 미행을 하는 행위 자체를 예술화 했으며 매일매일 기록하는 것은 앞서 전술한 개념의 양식 중 전기적 양식을 설명키도 한다.
 
개념미술의 정신은 오늘날의 미술로 이어졌다. 1990년대부터 공공미술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 나아가서는 관계미학이라는 다양한 명칭 하에 개념미술은 또 다른 담론으로 거듭 변신을 해 왔다. 작품을 둘러싼 컨텍스트에 대한 비난과 공격에서 벗어나 커뮤니티 위주로도 확장되었고, 개념미술은 이제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이론과 함께 그 맥을 같이 함으로써 전후미술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전통미술에 대한 거부와 반발로 출발했던 설치미술이 이제는 미술관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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